나치의 아우슈비츠나 구 소련의 구라구와 같은 강제 수용소는 없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에는 강제 수용소가 존재한다.

그 실태가 점차 밝혀져 왔다.

각국의 인권단체등이 조사해 보고하고 있다.

북한 강제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해 탈북에 성공한 사람들이 증언하기 시작하였다.

증거·증언이 모여 검증이 진행되고 강제 수용소의 위치도 위성사진으로 확인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 운동 본부가 강제 수용소 폐절 운동의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타국에 있어서도 폐절 운동의 기운이 높아지고있다.

폐절을 호소하는 국제적인 움직임 속에서 드디어 일본에도 강제 수용소 폐절 운동에 특화한 전국조직이 설립 되었다.

드디어,라고 해야할 자체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인간으로서 매우 부끄럽게 여겨진다.

이 폐절 운동을 일으키는 모임의 명칭을 NO FENCE(노 펜스)로 정했다.

NO FENCE in North Korea 이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에 있는 강제 수용소를 없애기 위한 운동(액션)을 일으키는 모임이다.

운동은, 국제적인 태동 속에서 일정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그중에서, 일본인 한사람 한사람의 인권의식이 어떻게 변할것인가?

미래의 일본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국·한반도와 더욱 우호관계를 쌓아 가기 위해서도, 국제사회에 일본의 인권에 대한 입장을 보이기위해서도 강제 수용소의 폐절에 나설 생각이다.

언젠가 100만의 한국 국민과 함께 시위 행진의 대열을 짜고, 함께 38도선을 걸어서 넘어가고싶다.

그 때는 쌀의 1킬로라도 괜찮으니까 배낭에 짊어서 북한 사람들에게 직접 보내고 싶다.

100만명이 갖고가면 1000톤이나 된다.

하루라도 빨리 강제 수용소에서 거의 기아상태로 사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1989년의 가을, 나는 독일에 있었다.

동서 독일의 통일을 호소하는 사람, 서독일에의 탈출을 생각하는 사람, 동독일에 남아서 싸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소규모집회에서, 나도 그 날을 꿈꾸고 있었다.

드디어 그들의 작은 집회가, 100만 시민의 시위행진에 이어졌던 사실을 나는 잊지 않는다.

역사는 민중의 승리를 항상 증명하고 있다.

정치가 역사를 만드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변천, 혁명은 민중이 일으켜 왔다.

역사가 움직이는 그 때는 민중이 움직일 때다.

■수나가와 쇼오쥰/프로필

1960년생.주 가나 대사관, 주 바레인 대사관, 외무보도관실보도과, 아시아국 지역정책과를 거쳐 1990년 외무성 퇴직.현재, (주)데푸로(소프트웨어/도큐먼트 번역, 데이타베이스 개발),및 (주)NetLive(인터넷 생중계 사이트)의 대표 이사.『극비지령』 (NHK출판)에서 KAL기폭파사건의 범인구속의 진상을 공표.비지니스로 해외를 다니는 한편 외교·공안관련의 집필·평론, 납치 문제해결을 위한 강연 활동에도 주력.